책읽아웃 그냥님이 소개하신 책. 출근길에 듣고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ebook을 구매했다. 듣는 내내 어찌나 재미있던지, 줄거리를 더 얘기해줬으면 하면서도 스포가 될까봐 그만 얘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유원은 18살 여고생이다. 성이 유, 이름이 정이다. 유원은 엄마, 아빠, 그리고 유원 이렇게 셋이 함께 산다.
유원은 종종 점심시간에 친구들 무리에서 벗어나 옥상 문 앞에서 빵으로 점심을 때우고 혼자서 시간을 보낸다. 보통은 영어 단어를 외우며 시간을 보낸다.
유원이 어렸을 때 부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친구는 신아 언니이다. 신아언니는 유원의 친언니인 예정의 친구다.
원이는 착한 학생, 공부를 꽤 잘하는 학생, 성실한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
원이는 종종 집에 (쳐들어오듯이) 들어와 무례하게 구는 아저씨의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원이는 6살 때 화재를 겪었다. 언니와 낮잠을 자고 있었을 때였다. 원이의 집이 있던 11층부터 14층까지 태우는 큰 화재였지만, 자신을 아파트 밖으로 던져준 언니와 자신을 받아준 아저씨 덕분에 원이는 목숨을 건졌다. 언니는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원이는 온 동네 사람들이 아는 유명인사이다. 마치 해리포터처럼 그 ‘화재’에서 살아남은 아이.
책의 주인공인 유원을 소개해보고 싶었다. 화재를 벗어내고 유원이라는 아이 자체를 바라보고 싶었는데, 결국 유원이의 성격, 친구 관계, 삶의 모습 등 유원이를 이루는 큰 부분들이 사고에 영향을 받은것들이었다. 화재의 영향이 닿지 않은건 ‘유원은 18세 여고생이다.’ 뿐인듯 하다. 화재는 유원을 설명하는데에 뺴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유원의 삶을 상상하는것만으로도 내 가슴이 답답헀다. 목숨을 구했다는 이유로 무례하게 찾아와 무리한 요구를하는 아저씨와, 무례함과 무리함에 응당히 화를 내지 못하는 부모님. 언니의 숭고한 희생으로 기적처럼 살아난 내가, 당신들 기억속 언니처럼 반듯하고 활기찬 사람이 되길 원하는 사람들. 나를 구하고 세상에서 떠난 언니.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는 자체가 누군가에게 불행을 주었고, 불행의 잔여가 내 삶을 계속 따라다니고 있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했다.
유원이 수현이와 만난 것에 정말 다행이다, 잘 됐다. 라는 감상밖에 할 수 없었다. 유원이가 하고싶었지만 여태껏 하지 못했던 말들을 수현이가 툭,툭 내뱉는다. 유원이는 그런 수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더 내보이고, 수현이와 대화를 함으로써 왜 내가 그렇게 느끼는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을 하게 된다. 수현이가 나타나 꾹꾹 누르며 담아내고만 있던 유원이가 밖으로 진심을 내뱉기 시작했고, 언니에게서 벗어난 자기의 인생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수현이의 어떤 면모가 유원이를 그렇게 바꿔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설명하기가 어렵다. 수현이가 그렇게 내뱉을 수 있었던 것은 수현이가 아저씨를 알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사고만 아는 사람들에겐 의인이자만 아빠로서 아저씨를 아는 수현이에게 아저씨는 의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현이의 얘기가 많이 나오지 않은건 아쉬웠다. 18살 나이에 봉사를 가고, 1인 시위에 나가는 수현이. 솔직하게 자신을 내보이고 대화하던 수현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좀 더 알고 싶었는데, 수현이에 대한 서사는 많지 않았다.
아무튼, 수현이와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되고, 수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유원은 ‘마땅히 느껴야 할 죄책감’이라고 생각한 죄책감에서 멀어지기로 한다. 언니의 그림자에서 한 발짝 걸어 나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수현이와의 첫 만남, 그리고 원이의 새로운 인생의 첫 걸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숨을 이유가 없는데도 몸을 잔뜩 웅크렸다. 누구일까. 조심성이 없는 발소리였다. 내 앞에 책상과 의자가 차곡차곡 포개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 애를 확인할 수 없었고 그 애도 내가 있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제발 그냥 가. 속으로 소리쳤지만 발소리는 점점 더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끔 커플이나 비밀 얘기를 하는 아이들이 5층 복도를 오가는 걸 보기는 했지만 이 책상 더미까지 헤치고 들어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품이 큰 체육복을 입은 낯선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겉으로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서로 깜짝 놀랐기 떄문에 우리는 각자 겸연쩍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저 애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궁금했지만 먼저 말을 걸 정도는 아니었다. 옥상 입구는 학교에서 가장 구석진 곳인 줄 알았는데, 다른 구석을 찾아봐야 하나. 얼마쯤 심란해졌다.
내 안락한 공간을 침범한 침입자가 뭘 하는지 의식하면서도 단어를 외우는 척 딴청을 피웠다. 침입자는 주춤하고 도로 계단을 내려가려다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서너 개의 열쇠가 달린 고리에서 하나를 찾아내더니 익숙한 듯 옥상 문에 걸려 있던 자물쇠를 열었다. 철컥, 소리를 내며 자물쇠가 열렀다.
“어?”
나는 바보 같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애는 내 쪽으로 돌아보았다. 무심한 표정이었다.
“들어올래?”
“아저씨”
“응?”
“방송 출연은 힘들 것 같아요.”
“왜? 학원 때문에?”
아저씨가 눈에 띄게 서운하고 실망스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요, 학원 때문은 아니에요. 아저씨, 저도 당당해지고 싶어요. 편해지고 싶어요.”
아저씨의 표정과 상관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아저씨는 내 말을 끊지 않았지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현이가 그렇게 사는 법을 알려줬어요.”
수현의 이름을 꺼내자 아저씨가 이마를 찌푸렸다.
“그때, 제가 너무 무거웠죠.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다리가 으스러진 거잖아요. 죄송해요. 제가 무거워서, 아저씨를 다치게 해서. 불행하게 해서.”
“너……”
“그런데 아저씨가 지금 저한테 그래요. 아저씨가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가 힘들어요.”
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저런 눈을 하고 있구나. 목소리만큼 크고 위협적이지 않았다. 누렇고 흐리멍덩해 보였다. 아주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
나는 먼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이 펼쳐졌다. 계속 이곳에 있고 싶다. 아득해졌다. 벌써 오랫동안 하늘에서 살아온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 겨드랑이, 갈비뼈 부근이 가려워졌다. 처음에는 가렵다고만 생각했는데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겨울에 첫눈을 밟는 소리였다. 그런 깨끗한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내 옆구리를 뚫고 나왔다. 패러글라이더는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장비를 풀어서 밑으로 던져 버렸다. 몸이 더 가벼워졌다. 공중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잠시 빙글빙글 돌았다. 바다 표면과 부딪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까스로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나는 높이를 모르고 계속 구름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언니를 생각하니 언니가 내 위에 앉아 있었다.
“언니, 하나도 안 무섭지?”
“응.”
나는 처음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언니의 용기를 닮고 싶었다. 이 모든 것들을 누리게 해 준 언니를.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